외짝 양말 – 1. 나의 가장 젊은 날

1. 나의 가장 젊은 날

외짝 양말

삶은 후회의 연속이라고 한다. 후회란 이전의 잘못을 뉘우치는 일로, 때로는 평생 잊지 못하는 아련함을 남겨 준 때도 있다.

지난 삶에서 되돌아가고 싶은 때를 꼽으라면 아이들의 중,고등학생 시절이 될 것 같다. 생동감 넘치는 풍성한 삶의 자취와 함께 가정과 직장 그리고 학교에서 제 역활들을 조화롭게 잘 해 내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연말이 다가오면 당시의 일로 일생 동안 지울 수 없는 부끄러운 순간이 생각난다.

어느 해 세모였다. 날씨도 추웠으나 성탄 캐럴이 거리에 넘쳐 흐르고 바빠지긴 해도 즐거운 분위기로 휩싸여 들떠 있었다. 크리스천이 아니어도 크리스마스트리의 찬란한 불빛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데에 충분했다.

당시, 나는 제조업 회사의 직장인이었다. 하필 성탄전야가 야간근무였다.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다가 거실에서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배경으로 세 아이의 방문에 양말들이 한 짝씩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산타의 선물을 핑계 댄, 애교 섞인 아름다운 메시지였다.

선물처럼 마음 설레는 것은 없다. 특별한 날, 존경과 사랑을 전하는 마음의 표시이니 그것만큼 더 기쁜 일도 흔치 않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아이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기껏 입학, 졸업 시의 새 교복이나 학용품 정도였다. 아버지와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싶다는 아이들의 따스한 마음이 흐뭇하게 와 닿았다.

내 초등학생 시절이 스쳐간다. 특별한 인연도 없었으나 교회를 나갔다. 그곳은 제2의 학교요, 놀이터였다. 찬송가를 배우고 성경 이야기도 들었다. 이른바 주일학교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친구들과 교회에 몰려다녔다. 당시 성탄절이면 교회에서 공책, 연필 등의 학용품과 떡,사탕 등의 먹거리 선물을 나누어 주곤했다. 눈 내리는 성탄절 새벽이면, 골목까지 찾아와 부르는 성가대의 아름다운 찬송가 소리에 잠을 깬다. 노래를 마친 성가대원들의 도란거리며 뽀드득대는 발걸음 소리는 천사들의 방문처럼 아름다웠다.

성탄절은 교인만들의 축제가 아니었다. 빨간 옷의 산타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와서 선물을 준다는 방학 책 속의 이야기를 믿고 은근히 선물을 기대도 했다. 순수한 그 동심의 세계가 잊힌 지 오래였다. 아이들의 그 한 짝의 양말이 수십 년 전, 아름답던 일들을 쉽게 일깨워 주었다. 잊고 지난 그리운 순간이기도했다.

꿈같은 옛 추억의 파노라마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왔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의 초대장을 앞에 두고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이 아닌가. 전날, 고락을 함께하는 부하 직원들을 위해 호기 있게 다 써버린 텅 빈 호주머니가 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가고 있었다. 어정쩡히 ‘다 큰 아이들이 무슨 산타를……’ 그런 궁색한 억지 변명을 얼버무리며 눈앞의 양말들을 처리하지 못한 채 밖으로 나갔다. 찜찜했다. 자꾸 무거워지는 발걸음은 속일 수 없었다.

통근버스를 탔다. 하지만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의식은 떠나지 않았다. 버스가 출발하자 현실이 확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롱거리는 양말들로 인해 차창 밖 거리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후회가 일기 시작했다. 버스를 세우지도 못한 채 회사에 도착하고 말았다.

소심한 성격 탓이던가 언짢은 출근길 탓에 계속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매사에 첫 단추가 잘 끼워져야했다. 마치 첫 손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사꾼들의 마수걸이 징크스 같은 것인지 모른다. 스스로 잘 고치지 못하는 성정 탓이기도 했다.

한 번도 속을 썩이거나 비뚤어진 적 없는 아이들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즐거운 시간을 함께했던 날들이란 유치원이나 학교 졸업식장 나들이가 고작이었다는 생각이 이어졌다. 그들의 아름다운 초대를 일 핑계로 외면해버린 못난 아버지의 모습이 점차 확대되어 왔다. 즐거운 기대를 무참하게 꺾어버린 비정한 가장이었다.

겨우 다음 날 아침, 퇴근하면서 어떻게 해 보리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동료들의 호주머니를 털게 했다. 아이들에게 호기로운 선물을 안겨줄 생각에 한결 밝아졌다. 퇴근을 하면서 돌아와 집 현관문을 열었다.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문에 매달려있던 양말들이 깨끗이 사라지고 없지 않은가.

아이들 방문을 열어 보았으나 아무도 없다. 모두 일찍 크리스마스카드를 전하기 위해 할머니 댁으로 갔다고 했다. 기 빠진 모습을 읽은 아내는 그것 보란 듯, 애매한 미소를 흘리면서 참담한 신경에 부채질만 하고 있었다.

“그 외짝 양말들을 찾는 거지요?’

이미 아이들은 두꺼운 유리벽을 쳤다. 아무리 소리 질러도 들리지 않는다. 기회란 찾아왔을 때 잡지 않으면 영영 사라지는 법이다. 책상 위에는 아이들이 함께 만든 예쁜 크리스마스카드가 한 장 놓여 있었다. 그 해 이후, 크리스마스에 양말이 걸리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 아이들이 출가를 해서 모두 가정을 이루고 학부모가 되었다. 얼마 전 세모에 서울의 큰딸네를 찾게 되었다. 거실에 놓인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니 불현듯 옛 생각이 나서 딸에게 외손자들의 크리스마스 선물 값이란 명분으로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딸은 어리둥절해 하는 눈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본 외손자들은 좋아라고 날뛴다. 갖고 싶은 선물을 각각 외치며 학교에 다녀오면 사달라고 엄마에게 다짐하면서 우르르 등굣길에 나선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옛 그날의 내 아아이들의 모습이 그들 위에 겹쳐진다.

‘탄일종이 땡 땡 땡…… ,’ 어린 시절, 많이 듣던 성탄절 노래다. 지금은 교회의 종소리도 들을 수 없지만, 매년 계절이 되면 어김없이 그 깊은 후회는 되살아나곤 한다.

내려오는 KTX열차 안에서 외손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외할아버지! 엄마랑 크리스마스 선물로 축구화 사러 가요. 고맙습니다.”

딸이 외손자를 시켜서 대신 한 감사 인사다. 되돌아간들 치유할 수 없는 그 날, 그 외짝 양말의 후회는 아마 평생 지울 수 없을 것 같다.